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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수필]나랑 맞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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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거리 교차로였다. 대각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야 했고, 신호등도 두 번 바뀌어야 했다. 보다 넓은 도로의 신호등이 녹색으로 변했다. 그는 그 넓은 도로의 신호를 지키기 위해 보다 좁은 도로의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렸다. 그는 안전하게 대각선 맞은편으로 건너갔고, 조금 뒤 다른 사람들이 좁은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 사람들은 한 번 더 무심히 기다렸고, 이미 건너갔던 남자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앞서간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회식 자리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메뉴가 무엇이든 회식자리는 으레 음식이 조금씩 남았다. 목적이 음식보다는 다른 것에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남은 음식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 또 으레 있기 마련이다. 꼭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어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그냥 그랬다. 음식 귀한 걸 알았다. 다만 본인이 드시기는 싫었으리라. 그런 분들은 보통 부하 직원에게 남은 음식을 처리하라고 나직이 권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음식 귀한 줄 모른다는, 쓴 소리를 굳이 붙이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나직이 권하는 그 목소리는 부하 직원들에게 꽤나 거절하기 곤란한 무엇을 담고 있다. 몇몇이 나이를 거론하며 맞장구라도 치면 그저 그렇게 느껴지던 음식들이 점점 더 먹기 싫어진다. 하지만 어찌하랴. 고작 남은 음식 조금 때문에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그 음식은 종말을 고한다. 음식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넓은 대로의 신호를 지키기 위해 좁은 도로의 신호를 어긴 남자는 과연 비양심적인 사람인가. 여러 사람이 힘들게 완성한 음식을 남기는 것이 아까워 부하 직원에게 권하는 상사는 부도덕한 사람인가. 누군가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여 분개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우리는 안다. 아니 많이 목격했다. 신호를 아예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 회식 메뉴를 부하직원이 먹지도 못하는 메뉴로 멋대로 정하는 상사들. 훨씬 부도적하고 비양심적인 사람들도 많이 목격한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나또한 그리 생각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저 정도는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저 정도가 제일 무섭다고 느낀다.

  법과 규칙이 제대로 운영되는 사회라면 명백한 잘못은 보통 어떤 형태로든, 당장은 아닐지라도 결국은 대가를 치르리라고 믿는다. 그런 잘못을 처벌하고 예방하기 위해 법과 규칙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허나 도덕과 예절의 범주에 속하는 수많은 것들은 시대에 따라 변화되며, 논쟁의 대상이 된다. 그 적절성의 여부는 당장 그 사회에 속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판단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저 정도가 틈새를 파고 든다. ‘저 정도는 온갖 도덕적 문제의 틈새를 파고 들 수 있다. 답이 모호한 문제는 이의제기가 많은 법인 것이다. 그런 모호함 속에서 감정적 승리자는 저 정도를 행한 사람이다. 행하지 않은 자는 보상받을 수 없지만 행한 자는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획득한다. 재난상황에서 매점매석은 조금만 생각해도 공동체 전체를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일이지만 막상 문제가 생기면 늘 일어나는 일이다. 그들은 과연 모르고 그런 일들을 행하는가. 그 남자는 불법인줄 모르고 무단횡단을 했는가. 그 상사는 부하 직원의 표정을 보지 못했을까. 결단코 그럴 수는 없다. 모두 다 알면서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일이 저 정도의 범위에 속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가끔 그 판단이 잘못하여 나중에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보통 그런 일이 잘 없기 때문이다. 우회전 전용(또는 자회전) 차선에서 직진 신호를 기다리다 치고 나가는 운전자는 대부분 그 길이 초행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가는 것이 조금 빠르니까 그런 것이다. 11인승 승합차를 혼자 타고 있으면서 버스 전용 차선으로 운전하는 사람은 법을 반만 알고 그런 것인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그런 작은 악행들이 모여 결국 사람들이 계속 보다 나쁜 방향으로 선택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저 정도를 서로에게 계속 학습시키고 학습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면 결국 보다 선한 선택을 하는 사람은 바보가 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속도로에서 과속-난폭 운전을 하는 사람 보다 1차선에서 자신 보다 느리게 가는 사람을 욕한다. 그게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살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저 정도의 행위를 하는 사람도 당연히 만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표현하지 않는다. 아마 저 정도의 문제를 거론하며 또 다른 갈등을 맞게 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우리 자신이 저 정도의 피해자가 되면 그 찝찝함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도 못한다. 피치 못하게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야만 하는 지금의 우리는 더욱 그렇다. 그럴 때 우리는 보통 그 사람을 나랑 맞지 않는 사람또는 나와 스타일이 다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정확히 나쁘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을 피하고 싶을 때 쓰는 완곡한 표현인 것 같다. 그래서인가. 누군가 나에게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표현하면 뒷목이 서늘해지며, 그 사람과의 일을 돌아보게 된다. 사실 나도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기에. 글이 나의 허벅지를 찌르기 바라며 써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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