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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짧은글]잠수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판단하고자 한다. 아니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어떤 판단도 서지 않은 채 그 다음을 진행할 수 없기에 부족하지만 생각을 정리한다. 우선 나를 생각한다. 내가 현재 어떤 마음상태인지. 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을 했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말을 듣기를 바랐던 것인지. 다시 당신을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당신은 어떤 말을 듣고 싶었는지. 나의 말이 당신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생각을 거듭하며 가라앉는다. 어떤 바다인지 모를 곳으로. 우선 가라앉는다. 그 외에 특별히 할 수 없기에. 후회한다. 나의 선택을, 나의 선택된 말을. 되새겨본다. 다른 선택이 있었는지. 그 길.. 더보기
[에세이]반영된 언어 교육학에서 비고츠키는 언어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언어는 생각의 매개체이자 동시에 생각, 그 자체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언어를 통해서 인간의 사고가 발달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 안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중요한 언어는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아낄수록 미덕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현 시대는 자기 PR시대이지만 침묵은 자기 PR에 있어 중요한 전략적 수단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다원화되고 개인화된 현대 사회에선 자연스러운 귀결일지도 모른다. 워낙 다양한 인간들(사실 내 생각에 별반 다를 것도 없다고 느끼지만)의 이해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화적 결과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상대주의의 높은 이상은 현실 속에서.. 더보기
[수필]화장실, 가장 낮은 곳에서 드러나는 가치 화장실, 가장 낮은 곳에서 드러나는 가치 버스터미널 화장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간 탓에 깨끗한 순간을 찾기 힘들다. 청소부의 부지런한 손길도 수많은 나그네들의 방문에 부족하기만 하다. 빈 칸을 찾기 힘든 터미널 화장실에서 굳게 닫힌 칸막이 문을 보며 건너편 편안히 앉아 있을 누군가를 많이도 원망했다. 이제 그만 나와도 되련만,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구나, 배가 통증을 호소할수록 원망의 농도는 짙어 갔다. 그러다 덜컥 뒤늦게 달려온 사람이 후다닥 들어가 버리면 정말 살인이라도 날 것만 같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218074/ 좌변기 칸막이 속에서도 안 좋은 기억은 계속된다. 더러운 변기, 아무렇게나 버려진 휴지들은 큰 문제도 아니다. .. 더보기
[초대장]5월 초대장 배부합니다. 티스토리 초대장 배부합니다. bdgnext.tistory.com 블로그 방명록에 비밀글로 신청해주세요. 신청하실 내용은 1. 초대장 받으실 이메일 주소 2. 개설할 블로그의 주제 3. 주제 선정 이유(간단히) 적어주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벤트 마감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보기
[짧은글]질문 질문은 의사소통을 효율적으로 하기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통상 당연시되거나, 질문을 받는 사람이 당연시하는 문제에 대해 재차 질문할 경우 그 의도와 무관하게 약간 반문하는 듯이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당연하다"라고 답한 것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 것들에 자주 의문이 드는 몹쓸 성격을 가진 나로서는 질문만 하기에도 벅찬 느낌이 든다. 끝. 더보기
[짧은글]유리잔 다섯 살 즈음의 기억이라 사실 기억인지 상상인지 꿈인지도 확실치 않은 일이다. 바닷가 근처 단칸방에 살던 시절, 참 부지런히 싸돌아 다녔다. 아는 게 없어서 그냥 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주변엔 신기한 것 투성이였다. 집으로 한 번에 돌아오지 못해 작은 마을을 몇 바퀴씩 돌다 지친 적도 많았다. 하루는 집 근처 큰 나무 밑에 버려진 유리잔을 보았다. 멀쩡해 보이는 유리잔이 버려져 있기에 누가 버렸을까, 왜 버렸을까, 가지고 가도 될까, 온갖 생각을 하며 유리잔을 바라보았다. 바라보기에 지쳐갈 즈음, 나도 모르게 덥썩 유리잔을 잡았다. 아마도 들고 가려고 했으리라.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유리잔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손에 쥔 상태에서 산산조각난 유리들은 나의 손을 찢으며 바닥에 떨어졌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더보기
[초단편소설]입사동기 김씨의 입사동기는 게을렀지만 인정받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생존 전략은 허세와 몰염치, 입발림과 무의미 추구다. 한번은 팀장님이 조금 처리하기 애매한, 어렵지도 쉽지도 않고 안 하기도 뭣하지만 꼭 필요하지도 않으며 누구의 일도 아닌 일을 대충 처리하기 위해 팀원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아무도 선뜻 하겠다는 말을 하지않는 상황에서 김씨는 묘한 압박감을 느꼈고 결국 손을 들고 자신이 하겠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김씨의 입사동기는 업무보느라 잘 못들었다며 김씨에게 무슨 일을 한다는 건지 묻는다. 김씨의 간략한 설명 뒤 입사동기 안씨는 선뜻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같이 도와주겠다고 팀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그 일은 둘이서 같이 할 일은 아니었지만 선의를 묵살하는 것은 악의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보기
[짧은글]정신병 정신병이 가득하다. 외로워서, 기대에 부응하기위해, 무시 당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은 정신병으로 귀결된다. 교사는 꽤 정신병에 걸리기 쉬운 직종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비판하는 일을, 그리고 그 직접적인 수혜자 마저도 비난하는 일을, 알면서도 할 수 밖에 없으니 정신이 온전하면 이상할 것이다. 이런 열악함 속에서 몇 가지 방어막은 필수다. 적어도 하나쯤은 장착해야한다. 그 가장 처절한 방어막은 "난 잘못한 것이 없어"가 아닌가싶다. 원래 인간은 기본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는데. 가끔 학생과 갈등이 생겨 고성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 자신을 방어하는 표현과 변명같은 회피를 학생이 아닌 교사가 하고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학교밖에 있는 사람들은 교사가 대단한 슈퍼갑으로서 학생들에게 갑질을 한다고 생각하지.. 더보기
[시?]흑과 백 사이 차 안에서 우리는 말이 없었다. 어떤 말을 내놓기엔 이미 너무 많은 단어가 우릴 괴롭힌 상태였다. 침묵의 무게감에 차창은 커튼을 드리운다. 알갱이 하나하나 우릴 지켜보는 듯하다. 다툼의 시작은 항상 미미해서 흐릿해지고 당장의 감정만 짙게 남아있다. 전조등 불빛은 어색한 시선 처리를 훌륭한 집중력으로 바꾼다. 작은 창 너머 희끗한 풍경에 어떤 숙명적 인연을 기다리듯 몰입한다. 훌쩍이던 소리도 집과의 거리가 가까워오며 자연스레 잦아든다. 이런 기분으로 헤어져도 되는 것일까, 수능을 망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의 더러운 해방감으로 주차를 한다. 잠시 공백이 지나가고 들릴 듯한 목소리의 인사와 함께 차문이 닫혔다. 보고싶지만 동시에 그러고 싶지않아 여전히 네모난 풍경에 집중한다. 시멘트 벽의 작은 홈이 비위를 거.. 더보기
[짧은 글]과거를 매듭짓다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다. 가물가물한 그 때의 기억을 겨우 끄집어내어 대화를 풀어나간다. 중학교 동창을 만난다. 꽤 선명하고 어설펐던 그 때를 추억하며 웃음을 만들어 낸다.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다. 돌아보면 별 것 아닌 그 때의 시름과 절망을 되새기며 아쉬워한다. 대학교 동창을 만난다. 한없는 자유에 몸을 내맡긴 채 떠돌았던 무책임한 자아를 공유한다. 과거 어느 시점에 여전히 붙잡혀 있다. 트라우마는 아니다. 후회는 없다. 하지만 붙잡혀 있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라는 무의미한 가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정성들여 필기한 공책을 버릴 때 주저되는 그런 마음이리라. 버려야하지만 버리기가 힘들어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어린 시절, 새학기에 가장 기대되는 것은 새로운 친구이다. 어떤 친구가 우리 반에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