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득

[에세이] 나홀로 도전

반응형

 중학교 때의 일이다. 그즈음 또래들은 늘 서로를 놀리며 어울리고, 또 그러다 싸우기를 반복했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특히 운동에 관해서 무시 받는 걸 지독하게 싫어했다. 학교가 끝나고 방과 후에 축구나 농구를 하는 것은 당연했고,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도 운동장은 늘 아이들이 넘쳐났다. 수십 개의 공들이 어지럽게 뒤엉키는 와중에서 우리 반의 공을 정확히 찾아 축구를 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뿐이다. 그런 일상을 보내다 보니 대화의 주제는 늘 누가 더 축구를 잘한다, 농구를 잘한다 등으로 가득 찼고, 이러한 대담 평가의 연장전으로 다시 축구를 하고, 농구를 하고, 또다시 핀잔을 주고, 이의를 제기하며 그 시절은 지나갔다. 그냥 그런 것이 가장 중요한 시절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날도 그러한 시절의 가벼운 하루였다. 오전 수업이 끝난 후 점심 도시락을 순식간에 비워버리고 우리 반 친구들은 운동장으로 나갔다.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서 신발 끈을 묶고 있는데 평소 나의 축구 실력을 깔보던 친구 한 놈이 옆으로 슬며시 다가왔다. 나는 퉁명스레 ?’라고 물으며 필연적으로 이어질 그 친구의 깐죽거림을 대비하였다. 하지만 그 녀석은 평소와 달리 바로 말하지 않고 축구 골대 쪽을 가리켰다. 그 손끝으로 자연스레 시선을 옮기니 축구 골대 옆에 아이들이 가지고 놀 법한 분홍색 고무공이 눈에 들어왔다. 웬 고무공이 운동장에 돌아다니지라는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역시나 퉁명스레 뭐 어쩌라고?’라며 친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녀석은 그 고무공을 차서 골대에 넣으면 천 원을 준다는 정말이지 나를 철저히 무시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도발을 하는 것이다. 나는 무시 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천 원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동시에 빠져 몇 차례 친구에게 진짜 천 원을 줄 것인지 물어보고, 실제로 주머니에서 친구가 천 원을 꺼내 보여주는 것까지 확인한 후 잘 봐라는 말을 남기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나는 친구가 도대체 왜 그런 제안을 한 것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무시한 걸로만 생각했다. 이까짓 고무공을 1m도 안 되는 골대까지 차서 넣는 것이 뭐가 어려울 것이라고 이딴 도발을 하는지, 한편으로는 그 녀석이 무시하고 싶은 마음에 괜히 무리하여 피 같은 천 원을 날리는구나, 내가 굳이 운동장까지 가서 고무공을 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구나 등등의 생각을 하며 있는 힘껏 그 분홍색 고무공을 걷어 찼다. 하지만 그 순간 날아간 건 고무공이 아니었고,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통증은 발끝에서부터 발목을 타고 뇌의 뒤쪽 어느 부분까지 타고 올라와 머리마저 아팠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모멸감이 느껴졌다. 구부린 자세에서 슬쩍 옆을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무 생각없는 친구들은 그냥저냥 좋다고 웃고 있었다. 썩을 놈들.. 나는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다시 고무공을 쳐다보았고, 내가 힘껏 찬 고무공은 겨우 반바퀴 정도 돌아간 상태였다. 동시에 나는 반바퀴 정도 회전한 공의 아래 부분에 뚫린 검은 구멍을 발견하였다. 아주 익숙한 내가 잘 아는 어떤 공한테만 존재하는 세 개의 구멍이었다. 그렇다. 내가 고무공이라고 철저하게 믿었던 그 공은 볼링공이었다. 무지막지하게 무겁고 딱딱한, 통상적인 공이라고 부를 수 없는, 특수한 장소에서 특수한 방법으로만 굴러가는 그 무식한 공이었던 것이다. 그 특수한 공이 도대체 왜 평범한 학교의 운동장에 와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상식선에서 그 공을 고무공이라고 생각했고, 이미 그 공이 볼링공인지 알고 있던 친구 녀석은 나의 상식을 이용하여 나에게 한 방 먹인 것이다. 정보의 부재, 나는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 친구 놈의 의도를 넘겨짚고, 자존심에 무리한 도전을 한 것이다.

 그날 나는 병원에 갔고 결국 깁스를 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내 모습을 본 친구들은 여전히 웃으며 놀릴 뿐, 걱정하는 모습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나는 그날의 실패를 철저히 곱씹었고, 이제는 어떤 도발에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일단 의심한다. 그리고 확인하고, 결정한다.’ 라는 행동 수칙을 세웠고, 가급적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누군가 아파 보이면 꼭 위로해주자.’라는 행동 수칙도 세웠다. 혼자 아픈 것은 너무 슬픈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반응형

'문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내를 위한 격언  (0) 2021.06.18
시란,  (0) 2021.06.16
한국교원대 파견 생활 후기  (7) 2021.02.26
[수필]나랑 맞지 않는 사람  (0) 2020.03.10
[한풀이]이상한 사람  (0) 2019.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