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득

[수필]화장실, 가장 낮은 곳에서 드러나는 가치

반응형

  화장실, 가장 낮은 곳에서 드러나는 가치

 

 

  버스터미널 화장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간 탓에 깨끗한 순간을 찾기 힘들다. 청소부의 부지런한 손길도 수많은 나그네들의 방문에 부족하기만 하다. 빈 칸을 찾기 힘든 터미널 화장실에서 굳게 닫힌 칸막이 문을 보며 건너편 편안히 앉아 있을 누군가를 많이도 원망했다. 이제 그만 나와도 되련만,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구나, 배가 통증을 호소할수록 원망의 농도는 짙어 갔다. 그러다 덜컥 뒤늦게 달려온 사람이 후다닥 들어가 버리면 정말 살인이라도 날 것만 같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218074/

 

 좌변기 칸막이 속에서도 안 좋은 기억은 계속된다. 더러운 변기, 아무렇게나 버려진 휴지들은 큰 문제도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이상한 광고 문구들과 정신질환을 앓는 것 같은 사람들의 무분별한 낙서들이다. 행여 내 자식이 변기에 앉아 저 글귀들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장기 매매’, ‘신장 이식따위의 글귀를 보며 어떻게 인간에 대한 존엄을 가질 것이며, 비아그라, 성 흥분제 판매 등의 광고를 보며 얼마나 쓸모없는 상상들을 펼치겠는가. 게다가 별 의미도 없이 휘갈겨 놓은 욕설들, 선정적인 문구들은 그 자체로 악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 사진 : 구글 이미지 편집(터미널 화장실)

 

  한 달 전쯤, 학교 화장실에서 충격적인 글을 보았다 청소 아주머니께서 학생들에게 적어놓은 부탁의 당부,

소변기에 휴지를 넣으면 청소하기가 힘듭니다.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주세요. -아줌마-”

 라는 사실 꽤 흔한 부탁 아래로,

휴지나 갖다놔, XXX.”

라고 누군가 휘갈겨 놓은 것이다. 그 분께서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답글을 달아놓은인지 이해가 가지않았다.학교 화장실 청소를 직접 하던 예전 시절이 생각난다. 힘든 구역이라고 3~4명 정도가 항상 배정되었는데 결국 한두명이서 고생고생 했던 기억이 난다. 때문에 친구랑 싸우기도 하고, 어영부영 같이 하다가 물장난으로 끝나기도 하고. 어설펐지만 적어도 화장실 청소가 힘들다는 사실은 서로 공유했던 것 같다.

 

  대학시절, 화장실은 나에게 따뜻한 공간이었다. 서있을 때 보이지 않던 글귀들이 좌변기 눈높이에서 나를 위로하곤 했다. 비슷한 좌절, 비슷한 고민들로 힘들어 했을 그 청춘들은 화장실 낙서로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러니 너도 할 수 있다.”

작은 실패는 큰 성공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분명 자신의 실패와 좌절에서 비롯되었을 그 희망의 문구들은, 그렇기 때문에 큰 힘이 되어 다가왔다. 갑자기 울컥하여 눈물이 나오더라도 아무도 모르는 그 공간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다. 지쳐있는 청춘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심하게 흘러만 가던 시간들도 그 안에선 조금 천천히 흘러가는 듯 느껴졌고, 사방이 막혀 답답할 법도 한 공간은 오히려 가장 편안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조금 과장하면 변기는 사람들의 더러운 오물을 받아먹음으로써 사람들을 조금씩 정화시켜주는, 그 자신은 가장 낮은 곳에 있지만 그럼으로써 다른 모든 이들을 드높이는, 그런 곳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심각한 공중 화장실의 실태를 느끼고 지자체와 여러 기관에서 최근 화장실 문화를 개선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음악이 흐르고, 시가 있고, 기분이 좋아지는 화장실들이 많이 생겨났다. 다만 그 화장실들이 공공 요금으로, 세금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다면 분명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밝아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photo-2159461/

반응형

'문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짧은글]잠수  (0) 2017.10.25
[에세이]반영된 언어  (0) 2017.09.01
[초대장]5월 초대장 배부합니다.  (15) 2017.06.06
[짧은글]질문  (0) 2017.05.29
[짧은글]유리잔  (0) 2017.05.16